☞…………… 추천시인/천상병57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윤동주 론) - 천상병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윤동주 론) - 천상병1 깊은 밤 멍청히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소리가 난다. 방안은 캄캄해도 지붕 위에는 별빛이 소복히 쌓인다. 그 무게로 살짝 깨어난 것일까? 그 지붕 위 별빛 동네를 걷고 싶어도 나는 일어나기가 귀찮아진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지붕 위 별빛 동네 선술집에서 누가 한잔 하는 모양이다. 궁금해 귀를 쭈빗하면 주정뱅이 천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요절한 친구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닐 게다 저 놈은 내 방을 기웃하는 도적놈이다. 그런데 내 방에는 훔쳐질 만한 물건이 없다. 생각을 달리해야지. 지붕 위에는 별이 한창이다. 은하수에서 온 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2024. 10. 4. 광하문에서 - 천상병 광하문에서 - 천상병 아침길 광화문에서 "눈물의 여왕" 그녀의 장례 행진을 본다. 만장이 나부끼고,악대가 붕붕거리고, 여러 대의 차와 군중이 길을 매웠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죽은 내 아버지도 "눈물의 여왕"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댔지 아니다 그런것이 아니다. 여인들 장례식도 예총 광장에서 더러 있었다. 만장도 없고, 악대는커녕행진은커녕 아주 형편없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임이었다. 그 초라함을 위해서만이그들은 "시"를 썼다. 2024. 10. 4. 크레이지 배가본드 - 천상병 크레이지 배가본드 - 천상병1 오늘의 바람은 가고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뒷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2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담배를 빤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우물가, 꽁초 토막. 2024. 10. 3. 봄소식 - 천상병 봄소식 - 천상병 입춘이 지나니 훨씬 덜 춥구나! 겨울이 지나고 봄 같으니, 달력을 아래위로 쳐다보기만 한다. 새로운 입김이여 그건 대지의 장난인가! 꽃들도 이윽고 만발하리라. 아슴푸레히 반짝이는 태양이여 왜 그렇게도 외로운가. 북극이 온지대가 될 게 아닌가. 2024. 10. 3. 희망 - 천상병 희망 - 천상병 내일의 정상을 쳐다보며 목을 뽑고 손을 들어 오늘 햇살을 간다. 한 시간이 아깝고 귀중하다. 일거리는 쌓여 있고 그러나 보라 내일의 빛이 창이 앞으로 열렸다. 그 창 그 앞 그 하늘! 다만 전진이 있을 따름! 하늘 위 구름송이 같은 희망이여! 나는 동서남북 사방을 이끌고 발걸음도 가벼이 내일로 간다. 2024. 10. 3. 곡 신동엽 - 천상병 곡 신동엽 - 천상병 어느 구름 개인 날 어쩌다 하늘이 그 옆얼굴을 내보일 때. 그 맑은 눈 한 곬으로 쏠리는 곳 네 무덤 있거라. 잡초무더기 저만치 가장자리에 꽃 그 외로움을 자랑하듯 신동엽! 꼭 너는 그런 사내였다. 아무리 잠깐이라지만 그 잠깐만 두어두고 너는 갔다. 저쪽 저 영광의 나라로! 2024. 10. 2. 오후 - 천상병 오후 - 천상병 그날을 위하여 오후는 아무 소리도 없이 귀를 기울이면 그래도 나는 나의 어머니를 부르며 울고 있다. 멀리 가까이 떠도는 하늘에 슬픔은 갈매기처럼 날아가곤 날아가곤 한다. 그것은 그 어느날의 일이었단다. 그 어느날의 일이었단다. 그리하여 고요한 오후는 물과 같이 나에게로 와서 나를 울리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2024. 10. 2. 편지 - 천상병 편지 - 천상병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이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2024. 10. 2. 국화꽃 - 천상병 국화꽃 - 천상병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고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2024. 10. 1. 나무 - 천상병 나무 - 천상병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2024. 10. 1. 유리창 - 천상병 유리창 - 천상병 창은 다 유리로 되지만 내 창에서는 나무의 푸른잎이다. 생기 활발한 나뭇잎 하늘을 배경으로 무심하게도 무성하게 자랐다. 때로는 새도 날으고 구름이 가고 햇빛 비치는 이 유리창이여. 2024. 10. 1. 눈 - 천상병 눈 - 천상병 고요한데 잎사귀가 날아와서 네 가슴에 떨어져간다. 떨어진 자리는 오목하게 파인 그 순간 앗 할 사이도 없이 네 목숨을 내보내게 한 상처 바로 옆이다. 거기서 잎사귀는 지금 일심으로 네 목숨을 들여다보며 너를 본다. 자꾸 바람이 불어오고 또 불어오는데 꼼짝 않고 상처를 지키는 잎사귀 그 잎사귀는 눈이다 눈이다. 맑은 하늘의 눈 우리들의 눈 분노의 너를 부르는 어머님의 눈물어린 눈이다. 2024. 9. 25.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