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건그렇고 48

자연스러운 짓

자연스러운 짓 비위와 상관없이 모든 음식을 거부하지 않는 왕성한 위장을 가진 강철 내장의 보유자였다. 그러나 요즘은 약간의 냄새만 맡아도 곧바로 토해 버린다.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인 먹는 자유를 박탈당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먹고 싶은 음식이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물이나 약간의 알약으로 배를 채운다. 속이 쓰리면 위산억제제나 구토억제제를 빨아 마시며 내장을 달랜다. 나는 이 액체를 처방한 의사에게 고마움은 없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고 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돈 없는 환자는 가차없이 죽이는 인간들 아닌가.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맛남을 거부하고, 향기로운 맛을 몸이 싫어한다. 꽃 향기만큼은 거부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요즘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들이 누리는 자유 중 본능이 지..

영혼 없는 전도자들

영혼 없는 전도자들 젊은 남녀가 나란히 문 앞에 서서는 "수도하는 사람인데요,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식사 후라 심심하던 찰나에 잘 됐다싶어 나가봤다. “계룡산에서 왔수?” “아닙니다. 시내에 수련원이 있는데요, 잠깐 설명 드려도 될까요?” “뭘요?” “도(道)에 대해 공부 중입니다만...” “누구의 도요?” “네?” “스승 없수? 경전이나 당신의 도를 이룬 선지자 같은 인물 없냔 말요. 뭔 선사 같은 거 말요.” “말씀 많이 들으셨나 봐요?” “뭔 말씀이요. 회원접수하고, 회원증 받고, 돈 내라는 말씀 말요?” “실례 했습니다.” “뭔 실례요? 들어오쇼. 소주나 한 잔 합시다.” “네?” “진정한 도에 대해 100분 토론 한 번 합시다. 이래봬도 내가 계룡산에서 2천 5백년간 공자랑 이메일 주고받으며..

그건 그렇고 - 자존심

그건 그렇고 - 자존심 “오랜 시간 나는 잘 해준 것 같은데 왜 날 떠나려 하나.” 생각이 들 땐 늦었다. 지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말에 무게를 실어 몇 번이나 일렀거늘 당최 인성이 변하질 않는구나.” 생각이 드는 상대방도 이미 늦었다. 저 두 사람이 원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가늠이 불가능한 노력과 배려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회복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정쩡한 등돌림으로 끝난다. 간혹 잘못을 알고 변하려 애써본다며 다가오지만 파헤쳐진 골을 메우기엔 서로가 힘들다. 이겨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내 주변에선 성공한 사례는 없다.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둘 중 한 사람의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졌음을 의미한다. 인연이 끝나는 날 전엔 모른다. 상대가 자존심을 ..

그건 그렇고 - 아름다운 가게

그건 그렇고 - 아름다운 가게 동전들을 이곳저곳 뒤져가며 모아보니 소주 두 병은 살만하다. 간만에 밖을 나가보니 밤새 눈이 내려 복사뼈를 덮을 만큼 수북이 쌓였다. 주춤, 뒤뚱 대며 가게로 간다.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면 어떻게 해요? 몸도 좋지 않으신 분이.” 가게 아주머니가 속 타는 말투로 한마디 건넨다. “주(酒)님의 은총으로 사니까요.” 귤 몇 개를 집어 봉지에 넣어 준다. “매번 미안합니다.” “껍질이 쭈글쭈글해서 팔지도 못하는 것들이에요.” 쪽방으로 돌아와 소주 뚜껑을 딴다. 경쾌한 금속의 마찰음이 감금 중이던 소주를 밖으로 인도한다. 온 세상을 눈이 덮어버린 이른 아침, 공복에 소주는 짜릿하다. 점액질 위장약보다 장기를 발라 내려가는 것이 빠르다. 빠른 소독과정 후 장기들을 갉아 먹겠지. 집..

그건 그렇고 - 귀뚜라미 보일러

그건 그렇고 - 귀뚜라미 보일러 얼마 전 눈이 온 뒤 강추위가 전국을 덜덜 떨게 하던 날 옆집 할머니가 찾아왔다. 두문불출하신 분인데 웬일인가 해서 나가봤더니 보일러가 고장이 났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묻는다. 집주인한테 말하라고 했더니 대신 해달란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여긴 부천이고 집주인은 대구에 산다. 집주인은 수리를 하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보일러 회사에서는 수리가 아니라 보일러를 통째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일러실에 가보니 보일러 내부에 수직으로 뻗어 서있는 두께 1Cm정도의 파이프에서 물이 물총을 쏘듯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미세한 구멍이라 물줄기는 길었다. 테이프로 감아도 보고 덜덜 떨면서 20여분 손을 댔지만 허사였다. 다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거니 중고 보일러를 알아..

나는 오늘 잘 살았는가?

나는 오늘 잘 살았는가? 째깍거리며 제 갈 길을 가는 초침소리가 들린다. 흐르는 시간은 아까워하면서 흐르는 물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냇물이 졸졸 흐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살아 온 삶을 돌이켜 보면 순식간에 지나온듯하지만 당연한 것이고 선대 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제적 경쟁, 타인과의 경쟁이 시간을 아깝게 느끼도록 뇌를 세뇌해왔다. 성공지침서라는 책들도 시간을 잘 쓰는 법 등 1초를 아깝게 생각하도록 우리의 뇌를 압박한다. 그런 책은 조바심만 생길 뿐 마음의 여유를 주지 못한다. 한 시간 일해서 지갑에 돈을 채울 수도 있고, 한 시간 명상으로 하루를 평화롭게 살 수 있다. 두 가지를 같이 한다면 더 할 나위없다. 사순절을 기념하는 교황의..

비 장난치듯 비가 온다. 마치 “제가 내리는 것 같나요? 아닌가요?”라고 묻듯이 비가 온다. 안개였다가, 가랑비였다가, 장대비였다가, 이슬비였다가, 보슬비였다가, 소나기였다가, 는개였다가, 작달비였다가, 여우비였다가, 지금은 궂은비다. 그건 그렇고... 할 일은 많고 주어진 시간은 짧지만 할 일은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주어진 시간은 잡스럽게 보내지 않는다면 남아돌지 않겠는가? 지정된 날짜 안에 모두 해치울 수 있다고 본다. 끝까지 노력해보고 이루지 못했으면 내 능력 밖인 것이다. 내가 창조주인가? 오버하지 말고 살자. 뭘 그리들 쫓겨 사는가. 그건 그렇고... 오늘은 ‘이화경(2007), 이상 문학에 나타난 주체와 욕망에 관한 연구, 한국학술정보(주)’를 읽었다. 학술연구서, 즉 논문의 형식이라 ..

이사를 가며

이사를 가며 일교차가 크다. 가스 밸브를 잠갔으니 오늘은 좀 껴입고 자야겠다. 이 방에서 마지막 밤이다. 짐은 모두 묶고 담아 정리를 했으니 내일 이사차가 오면 바로 실으면 된다. 이글도 이 방에서 마지막 글이다. 4년 가까이 살며 생활비를 벌기도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특히 공부를 참 많이 했던 4년 이었다. 그리고 눈물과 웃음이 공존했던 추억이 깃든 쪽방이었다. 죽음의 고비도 넘겼고 세례를 받았던 곳이다. 17년을 살았던 부천도 이 방과 같이 떠나게 된다. 이사 올 때나 지금이나 동네는 조용하다. 근래 들어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 이삿짐 나르는 소리를 들어오다 이젠 내가 이사를 가게 됐다. 아파트에 환장한 나라가 싫다. 그건 그렇고... 단골 가게에 들러 이사를 간다고 인사를 했더니 난리가..

직장을 구하다

직장을 구하다 할 말은 글로 다 남겼고 마지막 편지도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그들이 원하는 증명서와 내용을 보냈다. 그들이 원했던 대학입학증명서나 이외의 증명서도 원하면 보내준다고 했다. 나를 의심했던 내용이 풀려 그들이 내게 뒤집어씌운 ‘거짓증언자’라는 누명이 벗겨지길 바란다. 이사 오기 전 도시가스 도둑놈이란 누명보다 더욱 치욕스러운 누명이었다. 가난한 글쟁이보다는 좀 넉넉한 학벌과 재산가를 만났으면 한다. 그건 그렇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사랑 따라 난생처음 안산에 왔다. 사랑은 나를 믿지 않았다. 안산 근처도 오지 않고 떠났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년초에 내게 맞는 편집 일이 있었다. 작은 곳이었지만 적성에 맞는 일이었고 보수도 좋았지만 사랑덕에 포기했었다. 후회 해봐야 과거는 돌아..

단골을 뚫다

단골을 뚫다 이사를 가게 되면 그 동네에서 자주 갈 구멍가게와 선술집을 뚫어야 한다. 나처럼 도서관이나 성당 말고는 외출이 없는 사람은 매우 중요한 일다. 특히 술집의 경우는 분위기가 편해야 하며, 혼자 앉아 한잔해도 눈치 보이지 않아야하며, 외상이 돼야 한다. 삼겹살집이 나의 레이더에 걸렸다. 그 간판이 마음에 든다. “이 정돈(豚) 돼야지”다. 기가 막힌 문장이다. 삼겹살이 이정도 되는지 가게 수준이 이 정도는 돼야하는지 각종 생각이 들지만 글월대로 돼지고기가 이 정도는 돼야지다. 싸다. 며칠 다녔다. 나만 외상이 된다. 고로 뚫었다 말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돼지 돈(豚)과 비슷한 한자가 집 가(家)다. 지붕아래 돼지(가축)를 키우는 것이다. 우리민족도 마찬가지고 다른 민족도 만찬가지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