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 - 장석주 주여, 가을이 왔습니다. 연인들은 헤어지게 하시고, 슬퍼하는 자들에겐 더 큰 슬픔을 얹어주시고, 부자들에게선 귀한 걸 빼앗아 재물이 하찮은 것임을 알게 하소서. 학자들에게는 치매나 뇌경색을 내려서 평생을 닳도록 써먹은 뇌를 쉬게 하시고, 운동선수들의 뼈는 분리해서 혹사당한 근육에 긴 휴식을 내리소서. 스님과 사제들은 조금만 더 냉정하게 하소서. 전쟁을 하거나 계획 중인 자들은 더 호전적이 되게 하소서. 폐허만이 평화의 가치를 알게 하니 더 많은 분쟁과 유혈혁명이 일어나게 하소서. 이 참담한 지구에서 뻔뻔스럽게 시를 써온 자들은 상상력을 탕진하게 해서 더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게 하소서. 휴지로도 쓰지 못하는 시집을 내느라 더는 나무를 베는 일이 없게 하소서. 다만 사람들이 시들고 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