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32

사랑이란 - 윤영환

사랑이란 - 윤영환 사랑이 보입니까? 사랑이 뭔가요? 먹는 건가요? 사랑을 정의 내리기 위해 우리는 몇천 년을 방대하게 글로 그림으로 표현해왔습니다. 정의 내려지더이까? 뭐던가요? 우리 이야기해봐요. 뭐던가요? 크게 한숨들이 마시며 환하게 웃고 뱉어내며 나누세요. 그러면 조금 더 가까워집니다. 마시고 뱉지 않으면 당신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돌고 돌아 비로 내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 구름을 만듭니다. 사랑을 몰아 마시고 뱉어 주지 않으시면 누군가는 숨이 막혀 죽습니다. 뱉어낼 때 포장 좀 신경 쓰시고요. 아주 귀한 선물이잖아요. 詩時 : 2023.02.04. 05:04 윤영환

언제나 네 곁에 2 - 윤영환

언제나 네 곁에 2 - 윤영환 (부제 : 이태원에 뜬 별)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이 하늘 문 열고 거룩히 이루어지던 날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어머니와 삶을 반으로 쪼개어 살자던 당신을 뒤로 두고 꽃향기 가득하고 나비가 춤추는 곳으로 오르오니 육신을 흙에 묻어 매해 우지 마시고 어제 없던 작은 별 하나 보이거든 그 별을 사랑하소서 살포시 내 가슴에 들어온 뽀얀 손 잡고 일어서오니 한 곳만 바라보며 커져 있는 내 동공을 함부로 덮지 마시고 나 홀로 눈 감거든 고개 들어 이태원 밤하늘 그 별을 찾아 얼마나 아름다운지 내게 말해주오 이내 깜박이거든 축복 안에 있는 것이니 쓰다듬고 안아주소서 짧은 인연 거두어 당신의 그림자로 남아 태양 떠오르면 그대 뒤로 숨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 드릴 터이니 달 떠오르면 어제..

풋내

풋내 - 윤영환 나는 늘 덜 익은 과일 먹지도 못하는 씁쓸한 놈 손대지 않도록 익어가길 거부한다 내 삶을 그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난 익지 않은 채로 여기 늘 있으리 따기도 귀찮은 추한 모습으로 먹어 본 자는 알고 있다 뱉어내야 하는 괴로움을 익지 않은 것은 외로운 평화 아름답게 익어가는 추한 몸부림은 고독으로 뭉친 승무와 헛갈린다 손대기 싫은 추한 모습으로 커피 향이 코를 지나면 한 번 더 익어가는 삶 사각거리는 펜촉의 너울거림 한 번 더 익어가는 나 적혀지는 나는 풋내나는 과일 언젠가 누가 나를 알아보면 빨간색이라 말하며 나를 만지겠지 그리곤 따먹어 버릴 테지 그래서 난 익지 않으리 어두운 위성에 흡수되는 유성처럼 너에게 소화되지 않으리 먹지 마 늘 뱉어낼 테니까 詩時 : 2022.09.25. 13:..

절대고독찬가 - 윤영환

절대고독찬가 - 윤영환 지구 위 작은 방 한 켠이 먼 우주에서 지친 나를 재우려 한 오 분쯤 머물다가는 그런 곳이었으면 싶다 연결고리 하나 없는 나만의 시공간을 나는 만끽하고 앉았다 그 누구의 소리도 없는 나만의 이 공간이 과음한 다음 날 맛보는 속쓰림처럼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이 아림을 나는 성스럽게 즐긴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의 잔칫날 마치 처음 느낀 것처럼 기뻐 커다란 눈망울을 흔들던 아이의 동자 그 속에서 뛰어놀고 싶은 내게 삐걱거리는 의자가 발길을 재촉하고 나는 일어선다 어디로 가야 하나 만족스런 삶은 절대고독 속에서 이루어진다 저 흩날리는 비와 아직 녹아내리지 않은 눈들의 시작점에 나는 홀로 서 있다 바람이 눈물을 훑고 지난다 詩時 : 2022.09.12 00:12 風文 윤영환

그림자

그림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평생 나를 따라 다니며 내가 저지른 짓들과 뱉어낸 말들을 저 놈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 살며시 방 문턱에 서서 문을 확 닫아 끊어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나를 따라오고 손을 뻗어 담배를 집어 들거나 술잔을 들어도 따라다니며 나를 감시한다 그래도 저 놈이 마음에 드는 것은 처음 만날 때와 지금의 색이 같고 인연들이 이별을 고해도 늘 나와 같이 있었으며 입이 무겁다는 것이다. 詩時 : 2005.01.17 11:20 風磬 윤영환

그리움

그리움 같은 하늘 아래 너와 내가 살아 있다면 이별이 아닐지도 몰라 서점에서 같은 책을 동시에 집어 든다면 같은 번호의 버스를 같은 정류장에서 기다린다면 같은 열차 앞 칸에 네가 앉아있다면 친구 결혼식 객석에서 널 본다면 모퉁이를 돌다 너와 부딪힌다면 아니면 훗날 너와 내가 같은 장소에 뿌려 진다면 새 한 마리 날아와 너와 나를 삼켜 한 몸속에서 너를 만난다면 그렇게 삶이 끝나 하늘 위에 너와 내가 산다면 이별이 아닐지도 몰라 詩時 : 2008.11.02 06:19 윤영환

이동식 레이더

이동식 레이더 땅거미 숨는 잿빛 보도 위의 또각거림 오른 뺨으로 여나무개의 골목입구가 지나갔다 다음 모퉁이 아니, 그 다음 모퉁이 버스가 서자마자 번호도 읽지 않고 올라탄다 정차 횟수나 목적지는 의미없고 앉아 흔들거리다 너의 느낌이 오면 주저없이 내려 걷는다 밤의 시작을 알리는 가로등의 신호를 엉거주춤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오른 뺨으로 여나무개의 골목입구가 지나갔다 곁눈질로 매 순간을 찍어대며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향해 다시 쫓기듯 걷는다 우연히 마주치면 어떤 말을 할까 나는 널 찾아 다니며 산다 할까? 詩時 : 2005.11.08 18:33 風磬 윤영환

갔나봐

갔나봐 시계는 폐업했고 달력은 그날의 숫자만 보여준다 그마저 앗아 갈까 벽에 걸려 원을 그리고 있는 넥타이의 유혹을 가위로 끊으며 풀썩 주저앉는다 예나 지금이나 심장이 뿜어대는 대로 타들어 가는 붉은 연기를 넌 볼 수 없다 네가 원하는 하늘은 늘 푸른색이었고 아마도, 내가 늘 뱉어내는 담배연기랑 섞여 못 봤을 테니까 그래 그랬을 테야 흩날리던 체취 머문 자리 흔적들 쓸어 담아 가져간 후 이슬 되어 오를까 두렵다가도 네가 보는 푸른 하늘 구름 되겠지 우산 놓친 날 비되어 네게 스며들겠지 토닥이며 얼룩진 베게위로 잠든다 오늘더러 내일이어라 하며 그렇게 잠이 든다. 詩時 : 2006.01.25 05:04 風磬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