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시인/김수영95 地球儀(지구의) - 김수영 地球儀(지구의) - 김수영지구의의 양극을 관통하는 생활보다는차라리 지구의의 남극에 생활을 박아라고난이 풍선같이이 바람에 불리거든너의 힘을 알리는 신호인줄 알아라지구의의 남극에는 검은 쇠꼭지가 심겨있는지라무르익은 사랑을 돌리어보듯이북극이 망가진 지구의를 돌려라쇠꼭지보다도 허망한 생활이 균형을 잃을 때명정한 정신이 명정을 찾듯이너는 비로소 너를 찾고 라웃어라 2024. 10. 8. 눈 - 김수영 눈 - 김수영눈은 살아있다.떨어진 눈은 살아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눈은 살아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2024. 10. 8. 屛風(병풍) - 김수영 屛風(병풍) - 김수영병풍은 무엇에서부터라도 나를 끊어준다등지고 있는 얼굴이여주검은 취한 사람처럼 멋없이 서서병풍은 무엇을 향하여서도 무관심하다주검에 전면같은 너의 얼굴 우에용이 있고 낙일이 있다무엇보다도 먼저 끊어야 할 것이 설움이라고 하면서병풍은 허위의 높이보다도 어 높은 곳에비폭을 놓고 유도를 점지한다가장 어려운 곳에 놓여있는 병풍은내 앞에 서서 주검을 가지고 주검을 막고 있다나는 병풍을 바라보고달은 나의 등뒤에서 병풍의 주인 육칠옹해사의 인장을 비추어주는 것이었다 2024. 10. 7. 白蟻(백의) - 김수영 白蟻(백의) - 김수영내가 비로소 여유를 갖게 된 것은거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안에 있어서도 저 무시무시한 백의를 보기 시작한 때부터이었다백의는 자동식문명의 천재이었기 때문에 그의 소유주에게는일언의 약속도 없이 제가 갈 길을 자유자재로 찾아다니었다그는 나같이 몸이 약하지 않은 점에 주요한 원인이 있겠지만뇌신보다 더 사나웁게 사람들을 울리고뮤우즈보다도 더 부드러웁게 사람들의 상처를 쓰다듬어준다질책의 권리를 주면서 질책의 행동을 주지 않고어떤 나라의 지폐보다도 신용은 있으나신체가 너무 왜소한 까닭에 사람들의 눈에 띄지를 않는다고대 형이상학자들은 그를 보고「양극의 합치」라든가 혹은 「거대한 희열」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십구세기 시인들은 그를 보고「도벽의 왕자」혹은 단순히 「여유」라고 불렀다그는 남미의 어는 면공업.. 2024. 10. 7. 여름 아침 - 김수영 여름 아침 - 김수영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우리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원활하게 굽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나는 지금 간밤의 쓰디쓴 후각과 청각과 미각과 통각마저 잊어버리려고 한다물을 뜨러 나온 아내의 얼굴은어느틈에 저렇게 검어졌는지 모르나차차 시골동리사람들의 얼굴을 닮아간다뜨거워질 햇살이 산 위를 걸어내려온다가장 아름다운 이기적인 시간 우에서나는 나의 검게 타야 할 정신을 생각하며구별을 용사하지 않는밭고랑 사이를 무겁게 걸어간다 고뇌여강물은 잠잠하게 흘러내려가는데천국도 지옥도 너무나 가까운 곳사람들이여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여름 아침에는자비로운 하늘이 무수한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리라단 한장의.. 2024. 10. 7. 여름뜰 - 김수영 여름뜰 - 김수영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여름뜰이여나의 눈만이 혼자서 볼 수 있는 주름살이 있다 굴곡이 있다모오든 언어가 시에로 통할 때나는 바로 일순간 전의 대담성을 잃어버리고젖먹는 아이와같이 이즈러진 얼굴로여름뜰이여너의 광대한 손을 본다「조심하여라! 자중하여라! 무서워할 줄 알어라!」하는억만의 소리가 비오듯 내리는 여름뜰을 보면서합리와 비합리와의 사이에 묵연히 앉아있는나의 표정에는 무엇이지 우스웁고 간지럽고 서먹하고 쓰디쓴 것마저 섞여있다그것은 둔한 머리에 움직이지 않는 사념일 것이다 무엇때문에 부자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무엇때문에 자유스러운 생활을 피하고 있느냐여름뜰이여크레인의 강철보다 더 강한 익어가는 황금빛을 꺾기 위하여너의 뜰을 달려가는.. 2024. 10. 6. 사무실 - 김수영 사무실 - 김수영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아무 목적 없이 앉았으면 어떻게 하리남이 일하는 모양이 내가 일하고 있는 것보다 더 밝고 깨끗하고 아름다웁게 보이면 어떻게 하리일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져도 좋다는 듯이 구수한 벗이 있는 곳너는 나와 함께 못난놈이면서도 못난놈이 아닌데쓸데없는 도면 위에 글씨만 박고 있으면 어떻게 하리엄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곳에 사는 친구를 찾아왔다이 사무실도 네가 만든 것이며이 많은 의자도 네가 만든 것이며네가 그리고 있는 종이까지 네가 제지한 것이며청결한 공기조차 어즈러웁지 않은 것이오히려 너의 냄새가 없어서 심심하다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어떻게 하리어떻게 하리 2024. 10. 6. 구름의 파수병 -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 김수영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먼 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만약에 또 어는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먼지 낀 잡초 우에잠자는 구름이여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외양만이라도 남과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자기의 나체를 더듬어보고.. 2024. 10. 6. 기자의 정열 - 김수영 기자의 정열 - 김수영사면의 신문 위에 육호활자가 몇천개 박혀있는지 모르지만 너의 상상에서는 실제의 수십배는 담겨있으리라이 무수한 활자 가운데에신문기자인 너의 기사도매일 조금씩은 끼이게 되는데큰 아름드리나무에 박힌 옹이처럼 너는 네가 한 신문기사를 매일아침 게시판 위에서 찾아보는 버릇이 너도 모르게 어느덧 생기고 말았다생각하면 그것은 둥근 옹이같이 어지러웁기만 한 일이지만거기에는 초점이 없지도 않다그러나 이 초점을 바라고 보는 것이 아니다낭만적 위대성을 잊어버린 지 오랜 네가 인류를 위하여 산다는 것도 거짓말에 가까운 것이지만그래도 누가 읽어줄지 모르는 신문 한구석에 너의 피가 어리어있는 것이반가워서 보고 있는 것인가기사라 하지만 네가 썼다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가히 무관한 것그러기에 한.. 2024. 10. 5. 바뀌어진 地平線(지평선) - 김수영 바뀌어진 地平線(지평선) - 김수영뮤우즈여용서하라생활을 하여나가기 위하여는요만한 경박성이 필요하단다시간의 표면에물방울을 풍기어가며오늘을 울지 않으려고너를 잊고 살아야 하는 까닭에로날드 골맨의 신작품을눈여겨 살펴보며피우기 싫은 담배를 피워본다어는 매춘부의 생활같이다소곳한 분위기 안에서오늘이 봄인지도 모르고그래도 날개돋친 마음을 위하여너와 같이 걸어간다흐린 봄철 어느 오후의 무거운 일기처럼그만한 우울이 또한 필요하다세상을 속지 않고 걸어가기 위하여나는 담배를 끄고누구에게든지 신경을 피우고 싶다물에 빠지지 않기 위한생활이 비겁하다고 경멸하지 말아라뮤우즈여나는 공리적인 인간이 아니다내가 괴로워하기보다는남이 괴로워하는 양을 보기 위하여서도나에게는 약간의 경박성이 필요한 것이다지혜의 왕자처럼눈 하나 까닥하지 아니하.. 2024. 10. 5. 레이판彈(탄) - 김수영 레이판彈(탄) - 김수영 너를 딛고 일어서면생각하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나의 가슴속에 허트러진 파편들일 것이다너의 표피의 원활과 각도에 이기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나의 발을나는 미워한다방향은 애정 -구름은 벌써 나의 머리를 스쳐가고설움과 과거는오천만분지 일의 부감도보다도 더조밀하고 망막하고 까마득하게 사라졌다생각할 틈도 없이애정은 절박하고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너는 기류를 안고나는 근지러운 나의 살을 안고사성장군이 즐비한 거대한 파아티같은 풍성하고 너그러운 풍경을 바라보면서나에게는 잔이 없다투명하고 가벼웁고 쇠소리나는 가벼운 잔이 없다그리고 또하나 지휘편이 없을 뿐이다정치의 작전이 아닌애정의 부름을 따라서네가 떠나가기 전에나는 나의 조심을 다하여 너의 내부를 살펴볼까이브의 심장이 .. 2024. 10. 5. 煙氣(연기) - 김수영 煙氣(연기) - 김수영연기는 누구를 위하여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해발 이천육백척의 고지에서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바닷바람이 무섭다고구름을 향하여 도망하는 놈숫자를 무시하고 사는지이미 헤아릴 수 없이 오래된 연기자의식에 지친 내가 너를막상 좋아한다손 치더라도네가 나에게 보이고 있는 시간이란네가 달아나는 시간밖에는 없다평화와 조화를 원하는 것이아닌 현실의 선수백화가 만발한 언덕 저편에부처의 심사같은 굴뚝이 허옇고그 우에서 내뿜는 연기는얼핏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이다그리고하필 꽃밭 넘어서짓궂게 짓궂게 없어져보려는심술맞은 연기도 있는 것이다 2024. 10. 4.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