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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시인/김수영71

PLASTER - 김수영 PLASTER - 김수영나의 천성은 깨어졌다더러운 붓끝에서 흔들리는 오욕바다보다 아름다운 세월을 건너와서나는 태양을 줏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설마 이런것이 올줄이야괴물이여지금 고갈시인의 절정에 서서이름도 모르는 뼈와 뼈어디까지나 뒤퉁그러져 나왔구나-그것을 내가 아는 가장 비참한 친구가 붙이고 간 명칭으로 나는 정리하고 있는가나의 명예는 부서졌다비 대신 황사가 퍼붓는 하늘아래누가 지어논 무덤이냐그러나 그 속에서 부패하고 있는 것-그것은 나의 앙상한 생명PLASTER가 연상하는 냄새가 이러할 것이다오욕·뼈·PLASTER·뼈·뼈뼈·뼈······················ 2024. 9. 25.
더러운 香爐(향로) - 김수영 더러운 香爐(향로) - 김수영 길이 끝이 나기 전에는나의 그림자를 보이지 않으리적진을 돌격하는 전사와같이나무에서 떨어진 새와같이적에게나 벗에게나 땅에게나그리고 모든것에서부터나를 감추리검은 철을 깎아 만든고궁의 흰 지댓돌 우의더러운 향로 앞으로 걸어가서잃어버린 애아를 찾은 듯이너의 거룩한 머리를 만지면서우는 날이 오더라도철망을 지나가는 비행기의그림자보다는 훨씬 급하게스쳐가는 나의 고독을누가 무슨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잡을 수 있겠느냐향로인가보다나는 너와같이 자기의 그림자를 마시고 있는 향로인가보다내가 너를 좋아하는 원인을네가 지니고 있는 긴 역사였다고 생각한 것은 과오였다길을 걸으면서 생각하여보는향로가 이러하고내가 그 향로와 같이 있을 때살아있는 향로소생하는 나덧없는 나이 길로 마냥 가면이 길로 마냥 가면 .. 2024. 9. 24.
거미 - 김수영 거미 - 김수영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2024. 9. 24.
나의 가족 - 김수영 나의 家族 - 김수영고색이 창연한 우리집에도어느덧 물결과 바람이신선한 기운을 가지고 쏟아져들어왔다이렇게 많은 식구들이아침이면 눈을 부비고 나가서저녁에 들어올 때마다먼지처럼 인색하게 묻혀가지고 들어온 것얼마나 장구한 세월이 흘러갔던가파도처럼 옆으로혹은 세대를 가리키는 지층의 단면처럼 억세고도 아름다운 색깔...누구 한 사람의 입김이 아니라모든 가족의 입김이 합치어진 것그것은 저 넓은 문창호의 수많은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겨울바람보다도 나의 눈을 밝게 한다조용하고 늠름한 불빛 아래가족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도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은내가 그들에게 전령을 맡긴 탓인가내가 지금 순한 고개를 숙이고온 마음을 다하여 즐기고 있는 서책은위대한 고대조각의 사진그렇지만구차한 나의 머리에성스러운 향수와 우주의 위대감을담아주.. 2024. 9. 23.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 김수영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 김수영비가 그친 후 어느날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되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오고가는 것이 직선으로 혹은대각선으로 맞닥드리는 것같은 속에서나의 설움은 유유히 자기의 시간을 찾아갔다설움을 역류하는 야릇한 것만을 구태여 찾아서 헤매는 것은우둔한 일인줄 알면서그것이 나의 생활이며 생명이며 정신이며 시대이며 밑바닥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아아 그러나 지금 이 방안에는오직 시간만이 있지 않느냐흐르는 시간 속에 이를테면 푸른옷이 걸리고 그 위에반짝이는 별같이 흰 단추가 달려있고가만히 앉아있어도 자꾸 뻐근하여만가는 목을 돌려시간과 함께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것그것은 혹시 한자루의 부채그러나 그것은 보일락말락 나의 시야에서멀어져가는 것하나의 가냘픈 물체에 도저히 고정될 수 없는나의 눈이며 나의 정신.. 2024. 9. 23.
陶醉의 彼岸(도취의 피안) - 김수영 陶醉의 彼岸(도취의 피안) - 김수영내가 사는 지붕 우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울고가는 울음소리에도나는 취하지 않으련다사람이야 말할수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저 날짐승이라 할까내가 있는 방 우에 와서 앉거나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보아 두려워하는 것도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는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나의 얇은 지붕 우에서 솔개미같은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더운 날과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늙은 버섯처럼 숨어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있을 운명...그것이 사람의 발자욱소리보다도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나야 늙어가는 몸 우에.. 2024. 9. 21.
 구라중화(九羅重花) - 김수영 구라중화(九羅重花) - 김수영― 어느 소녀에게 물어보니너의 이름은 글라지오라스라고저것이야말로 꽃이 아닐 것이다저것이야말로 물도 아닐 것이다눈에 걸리는 마지막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듯영롱한 꽃송이는 나의 마지막 인내를 부숴버리려고 한다나의 마음을 딛고 가는 거룩한 발자국소리를 들으면서지금 나는 마지막 붓을 든다누가 무엇이라 하든 나의 붓은 이 시대를 진솔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치욕물소리 빗소리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나란히 옆으로 가로 세로 위로 아래로 놓여있는 무수한 꽃송이와 그 그림자 그것을 그리려고나의 붓은 말할수없이 깊은 치욕이것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글이기에(아아 그러한 시대가 온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나의 동요없는 마음으로너를 다시한번 치어다보고 혹은 내려다보면서 무량의 환희.. 2024. 9. 21.
시골 선물 - 김수영 시골 선물 - 김수영종로네거리도 행길에 가까운 일부러 떠들썩한 찻집을 택하여 나는 앉아있다이것이 도회 안에 사는 나로서는 어디보다도 조용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러한 나의 반역성을 조소하는 듯이 스무살도 넘을까말까한 노는 계집애와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부수수하게 일어난 쓰메에리의 학생복을 입은 청년이 들어와서 커피니 오트밀이니 사과니 어수선하게 벌여놓고 계통없이 처먹고 있다신이라든지 하느님이라든지가 어디있느냐고 나를 고루하다고 비웃은 어제저녁의 술친구의 천박한 머리를 생각한다그다음에는 나는 중앙선 어는 협곡에 있는 역에서 백여리나 떨어진 광산촌에 두고온 잃어버린 겨울모자를 생각한다그것은 갈색 낙타모자그리고 유행에서도 훨씬 뒤떨어진서울의 화려한 거리에서는 도저히 쓰고 다니기 부끄러운 모자이다거기다.. 2024. 9. 20.
미숙한 도적 - 김수영 未熟한 盜賊 (미숙한 도적)- 김수영기진맥진하여서 술을 마시고기진맥진하여서 주정을 하소기진맥진하여서 여관을 차저 들어갔다옛날같이 낯선 방이 그리 무섭지도 않고더러운 침구가 마음을 괴롭히지도 않는데의치를 빼어서 물어 담거놓고 들어 누우니마치 내가 임종하는 곳이 이러할 것이니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든다옆에 누은 친구가 내가 이를 뺀 얼골이 어린 아해 갔다고 간간대소하며 좋아한다이 친구도 술이 취한 얼골을 보니 처참하다창을 흔들고 가는 바람소리를 들어도 불안하지도 않고 도회에서 태어나서 도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젊은 몸으로 죽어가는 전선의 전사에 못지않게 불상하다고 생각하며그러한 생각을 함으로써 하로하로 도회의 때가 묻어가는 나의 몸을 분하다고 한탄한다친구가 일어나서 창밖으로 침을 뱉고 아래로 내려갔다 오드니.. 2024. 9. 20.
너를 잃 고- 김수영 너를 잃 고- 김수영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억만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억만 걸음 떨어져있는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늬가 없어도 산단다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늬가 주는 모욕의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억만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나의 생활의 원주 우에 어느날이고늬가 서기를 바라고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나는 또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2024. 9. 19.
祖國(조국)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同志(상병포로 동지)들에게 - 김수영 祖國(조국)에 돌아오신 傷病捕虜 同志(상병포로 동지)들에게 - 김수영그것은 자유를 찾기 위해서의 여정이었다.가족과 애인과 그리고 또하나 부실한 처를 버리고포로수용소로 오려고 집을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포로수용소보다 더 어두운 곳이라 할지라도자유가 살고 있는 영원한 길을 찾아나와 나의 벗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현대의 천당을 찾아 나온 것이다.나는 원래가 약게 살 줄 모르는 사람이다.진실을 찾기 위하여 진실을 잊어버려야 하는내일의 역설모양으로나는 자유를 찾아서 포로수용소에 온 것이고자유를 찾기 위하여 유자철강을 탈출하려는 어리석은 동물이 되고 말았다.「여보세요 내 가슴을 헤치고 보세요. 여기 짱빨장이 숨기고 있던 각인보다 더 크고 검은호소가 있지요.길을 잊어버린 호소에요.」「자유가 항상 싸늘한 것이라면 나.. 2024. 9. 19.
付託(부탁) - 김수영 付託(부탁) - 김수영자라나는 죽순모양으로부탁만이 늘어간다귀치않은 부탁을 하러 오는 사람들이갖다주는 것으로 연명을 하고 보니거절할 수도 없는캄캄한 사무실 한복판에서나는 눈이 먼 암소나 다름없이 선량한데이 공간의 넓이를 가리키면서한꺼번에 구겨지자 없어지는 벼락과 천둥이것이 또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는지여미지 못하는 생각 위에여밀 수 없는 부탁이여차라리 죽순같이 자라는대로 맡겨두련다일찍이 현실의 출발을 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오늘밤도 보아야 할 죽순의 거치러운꿈은완전히 무시를 당하고나서야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부끄러움이 없는부끄러움을 더한층 뜻있게 하기 위하여있으리라는 믿음에서만만치 않은 부탁내가 너의 머리 위에너를 대신하여벼락과 천둥을 때리는 날까지터전이 없으면 나의 머리 위에라도잠시 이고 다니며 길러야 할너.. 2024.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