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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시인/김수영95

초봄의 뜰안에 - 김수영 초봄의 뜰안에 - 김수영초봄의 뜰안에 들어오면서편으로 난 난간문 밖의 풍경은모름지기 보이지 않고황폐한 강변을영혼보다도 더 새로운 해빙의 파편이저멀리흐른다보석같은 아내와 아들은화롯불을 피워가며 병아리를 기르고짓이긴 파냄새가 술취한내 이마에 신약처럼 생긋하다흐린 하늘에 이는 바람은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데옷을 벗어놓은 나의 정신은늙은 바위에 앉은 이끼처럼 추워라겨울이 지나간 밭고랑 사이에 남은고독은 신의 무재조와 사기라고하여도 좋았다 2024. 10. 13.
꽃 - 김수영 꽃 - 김수영심연은 나의 붓끝에서 퍼져가고나는 멀리 세계의 노예들을 바라본다녹개와 분뇨들을 바라본다그러나 심연보다도 더 무서운 자기상실에 꽃을 피우는 것은 신이고나는 오늘도 누구에게든 얽매여 살아야 한다도야지우리에 새가 날고국화꽃은 밤이면 더한층 아름답게 이슬에 젖는데올 겨울에도 산 위의 초라한 나무들을 뿌리만 간신히 남기고 살살이 갈라갈 동네아이들.....손도 안 씻고쥐똥도 제멋대로 내버려두고닭에는 발 등을 물린 채나의 숙제는 미소이다밤과 낮을 건너서 도회의 저편에영영 저물어 사라져버린 미소이다 2024. 10. 13.
靈交日(영교일) - 김수영 靈交日(영교일) - 김수영나는 젊은 사나이의 그 눈초리를 보았다흔들리는 자동차 속에서 창밖의 풍경이 흔들리듯그의 가장 깊은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바람도 불지 않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듯 나의 마음에서 수없이 떨어져내리는 휴식의 열매뒷걸음질치는 것은 분격인가 조소인가 회한인가무수한 궤도여위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시인을 건져주기 전에시이여그 사나이의 눈초리를 보셨나요잊어버려야 할 그 눈초리를 굸은 밧줄 밑에 딩구는구렁이가 악몽이 될 수 있겠나요무수한 공허 밑에 살찌는 공허보다더 무서운 악몽이 있나요시내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셨나요그것보다도 흔적이 더 ㅇ벗는 내어버린 자아도하! 우주의 비밀을아니비밀은 비밀을 먹는 것인가요하하하.......... 2024. 10. 13.
曠野(광야) - 김수영 曠野(광야) - 김수영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발견하였다시대의 예지너무나 많은 나침반이여밤이 산등성이에 넘어내리는 새벽이면모기의 피처럼시인이 쏟고 죽을 오욕의 역사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이제 나는 광야에 드러누워도공동의 운명을 들을 수 있다피로와 피로의 발언시인이 황홀하는 시간보다도 더 맥없는 시간이 어디있느냐도피하는 친구들양심도 가지고 가라 휴식도-우리들은 다같이 산등성이를 내려가는 사람들그러나 오늘은 산보다도그것은 나의 육체의 융기광야에 와서 어떻게 드러누울 줄을 알고 있는나는 너무나도 악착스러운 몽상가조잡한 천지여깐디의 모방자여여치의 나래 밑의 고단한 밤잠이여[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어떻게 뒤떨어지느냐가 무서운 것]이라는 죽음의 잠.. 2024. 10. 12.
序詩(서시) - 김수영 序詩(서시) - 김수영나는 너무나 많은 첨단의 노래만을 불러왔다.나는 정지의 미에 너무나 등한하였다.나무여 영혼이여가벼운 참새같이 나는 잠시 너의흉하지 않은 가지 위에 피곤한 몸을 앉힌다성장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현인들이 하여온 일정리는전란에 시달린 이십세기 시인들이 하여놓은 일그래도 나무는 자라고 있다 영혼은그리고 교훈은 혁명은나는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용서할 수 없는 시대이지만이 시대는 아직도 명령의 과잉을 요구하는 밤이다나는 그러한 밤에는 부엉이의 노래를 부를 줄도 안다지지한 노래를더러운 노래를 생기없는 노래를아아 하나의 명령을 2024. 10. 12.
하루살이 - 김수영 하루살이 - 김수영 나는 일손을 멈추고 잠시 무엇을 생각하게 된다.-살아있는 보람이란 이것뿐이라고-하루살이의 광무여 하루살이는 지금 나의일을 방해한다-나는 확실히 하루살이에게 졌다고 생각한다-하루살이의 유희여너의 모습과 너의 몸짓은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러우냐소리없이 기고 소리없이 날으다가되돌아오고 되돌아가는 무수한 하루살이-그러나 나의 머리 위의 천장에서는 너의 소리가 들린다-하루살이의 반복이여불옆으로 모여드는 하루살이여벽을 사랑하는 하루살이여감정을 잊어버린 시인에게로모여드는 모여드는 하루살이여-나의 시각을 쉬이게 하라-하루살이의 황홀이여 2024. 10. 12.
叡智(예지) - 김수영 叡智(예지) - 김수영바늘구녕만한 예지를 바라면서 사는 자의 설움이여너는 차라리 부정한 자가 되라오늘이 헐벗은 거리에 가슴을 대고뒤집어진 부정이 정의가 되지 않더라도그러면 너의 벗들과너의 이웃사람들의 얼굴이바늘구녕 저쪽에 떠오르리라축소와 확대의 중간에 선그들의 얼굴강력과 기도가 일체가 되는 거리에서너는 비로서 겸허를 배운다바늘구녕만한 예지의 저쪽에 사는 사람들이여나의 현실의 메에뜨르여어제와 함께 내일에 사는 사람들이여강력한 사람들이여...... 2024. 10. 10.
채소밭 가에서 - 김수영 채소밭 가에서 - 김수영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무성하는 채소밭가에서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돌아오는 채소밭가에서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2024. 10. 10.
봄 밤 - 김수영 봄 밤 - 김수영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어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기척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오오 인생이여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눈을 뜨지 않는 땅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절제여나의 귀여운 아들이여오오 나의 영감이여 2024. 10. 10.
瀑布(폭포) - 김수영 瀑布(폭포) - 김수영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고매한 정신처럼 쉴사이없이 떨어진다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곧은 소리는 소리이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나타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높이도 폭도 없이떨어진다 2024. 10. 9.
자(針尺) - 김수영 자(針尺) - 김수영가벼운 무게가 하늘을생각하게 하는자의 우아는 무엇인가무엇이든지재어볼 수 있는 마음은아무것도 재지 못할 마음삶에 지친 자여자를 보라너의 무게를 알 것이다 2024. 10. 9.
꽃(二) - 김수영 꽃(二) - 김수영꽃은 과거와 또 과거를 향하여피어나는 것나는 결코 그의 종자에 대하여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또한 설움의 귀결을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설움이 없기 때문에 꽃은 피어나고 꽃이 피어나는 순간푸르고 연하고 길기만한 가지와 줄기의 내면은완전한 공허을 끝마치고 있었던 것이다중단과 연속과 해학이 일치되듯이어지러운 가지에 꽃이 피어오른다과거와 미래에 통하는 꽃견고한 꽃이공허의 말단에서 마음껏 찬란하게 피어오른다 2024.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