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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시인/김수영71

풍뎅이 - 김수영 풍뎅이 - 김수영너의 앞에서는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어도 좋았다백년이나 천년이 결코 세월이 아니라는 것은내가 사랑의 테두리 속에 끼여있기 때문이 아니리라추한 나의 발밑에서 풍뎅이처럼 너는 하늘을 보고 운다그 넓은 등판으로 땅을 쓸어가면서네가 부르는 노래가 어디서 오는 것을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내가 추악하고 우둔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너도 우둔한 얼굴을 만들 줄 안다너의 이름과 너와 나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알아질 때까지소금같은 이 세계가 존속할 것이며의심할 것인데등 등판 광택 거대한 여울미끄러져가는 나의 의지나의 의지보다 더 빠른 너의 노래너의 노래보다 더한층 신축성이 있는너의 사랑 2024. 9. 18.
애정지둔(愛情遲鈍) - 김수영 애정지둔(愛情遲鈍) - 김수영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대신 사랑이 생기었다굵다란 사랑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다리밑에 물이 흐르고나의 시절은 좁다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재긍정하는 것이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조용한 시절 대신나의 백골이 생기었다생활의 백골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다리밑에 물이 마르고나의 몸도 없어지고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나는 나에게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쓸쓸하지 않았다생활무한고난돌기백골의복삼복염천거래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일식을 하고첩첩이 무서운 주야애정은 나뭇잎처럼기어코 떨어졌으면서나의 손 우에서 신음한다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기다리는 것처럼생활은 열도를 측량할 수 없고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땅속으로.. 2024. 9. 17.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팽이가 돈다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아이가 팽이를 돌린다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또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도회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나의 일이며어는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모두 다 내던지고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정말 속임없는 눈으로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바쁘지도 않으니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팽이가 돈다팽이가 돈다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손가락 .. 2024. 9. 17.
아버지의 사진 - 김수영 아버지의 사진 - 김수영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는안경이 걸려있고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처럼그의 눈은 깊이 파지어서그래도 그것은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요나의 기아처럼 그는 서서 나를 보고나는 모오든 사람을 또한나의 처를 피하여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요영탄이 아닌 그의 키와저주가 아닌 나의 얼굴에서오오 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요조바심도 습관이 되고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나의 무리하는 생에서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그의 사진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또하나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비참이요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시계의 열두시같이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그의 얼굴을 숨.. 2024. 9. 16.
토끼 - 김수영 토끼 - 김수영1토끼는 입으로 새끼를 뱉으다토끼는 태어날 때부터뛰는 훈련을 받는 그러한 운명에 있었다그는 어미의 입에서 탄생과 동시에 타락을 선고받는 것이다토끼는 앞발이 길고귀가 크고눈이 붉고또는「이태백이 놀던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모두 재미있는 현상이지만그가 입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은 또한번 토끼를 생각하게 한다자연은 나의 몇사람의 독특한 벗들과 함께토끼의 탄생의 방식에 대하여하나의 이덕을 주고 갔다우리집 뜰앞 토끼는 지금 하얀 털을 비비며 달빛에 서서 있다토끼야봄 달 속에서 나에게만 너의 재주를 보여라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너의 새끼를2생후의 토끼가 살기 위하여서는전쟁이나 혹은 나의 진실성모양으로 서서 있어야 하였다누가 서있는 게 아니라토끼가 서서 있어야 하였다그러나 그는 캉가루의 일족은 아.. 2024. 9. 16.
 웃음 - 김수영 웃음 - 김수영웃음은 자기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푸른 목귀여운 눈동자진정 나는 기회주의적 판단을 잊고 시들어갑니다.마차를 타고가는 사람이 좋지 않어요웃고 있어요그것은 그림토막방 안에서 나는 우주를 잡을 듯이 날뛰고 있지요고운 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나에게 무엇이라고 하겠나요아마 잘있으라고 손을 휘두르고 가지요문턱에서.이보다 더 추운 날처럼 나는 여기서 겨울을 맞이하다가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도이 웃음만은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어리석은 일시간에 달린 기이다란 시간을 보시오내가 어리다고 한탄하지 마시오나는 내 가슴에또하나의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2024. 9. 15.
 이 - 김수영 이 - 김수영도립한 나의 아버지의얼굴과 나여나는 한 번도 이를보지 못한 사람이다어두운 옷 속에서만이는 사람을 부르고사람을 울린다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수염을 바로는 보지못하였다신문을 펴라이가 걸어나온다행렬처럼어제의 물처럼걸어나온다 2024. 9. 15.
아메리카 타임지 - 김수영 아메리카 타임지 - 김수영흘러가는 물결처럼지나인의 의복나는 또하나의 해협을 찾았던 것이 어리석었다기회와 유적 그리고 능금올바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나는 수없이 길을 걸어왔다그리하야 응결한 물이 떨어진다바위를 문다와사의 정치가여너는 활자처럼 고웁다내가 옛날 아메리카에서 돌아오던 길뱃전에 머리 대고 울던 것은 여인을 위해서가 아니다오늘 또 활자를 본다한없이 긴 활자의 연속을 보고와사의 정치가들을 응시한다 2024. 9. 14.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 - 김수영 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 - 김수영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 있다이것은 먼 바다를 건너온용이하게 찾아갈 수 없는 나라에서 온 것이다주변없는 사람이 만져서는 아니될 책만지면은 죽어버릴 듯 말 듯 되는 책가리포루니아라는 곳에서 온 것만은확실하지만 누가 지은 것인줄도 모르는제2차대전 이후의긴긴 역사를 갖춘 것같은이 엄연한 책이지금 바람 속에 휘날리고 있다어린 동생들과의 잡담도 마치고오늘도 어제와 같이 괴로운 잠을이루울 준비를 해야 할 이 시간에괴로움도 모르고나는 이 책을 멀리 보고 있다그저 멀리 보고 있는 듯한 것이 온당한 것이므로나는 괴롭다오오 그와 같이 이 서적은 있다그 책장은 번쩍이고연해 나는 괴로움으로 어찌할 수 없이이를 깨물고 있네!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가까이 할 수 없는 서적이여. 2024. 9. 14.
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 공자의 생활난 - 김수영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너는 줄넘기 작란을 한다나는 발산한 형상을 구하였으나그것은 작전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국수 - 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먹기 쉬운 것은 나의 반란성일까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사물과 사물의 생리와사물의 수량과 한도와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2024. 9. 12.
廟庭(묘정)의 노래 - 김수영 廟庭(묘정)의 노래 - 김수영1남묘문고리 굳은 쇠문고리기어코 바람이 열고열사흘 달빛은이미 과부의 청사이어라날아가던 주작성깃들인 시전붉은 주초에 꽂혀있는반절이 과하도다아아 어인 일이냐너 주작의 성화서리앉은 호궁에피어 사위도 스럽구나한아가 와서그날을 울더라을 반이나 울더라사람은 영영 잠귀를 잃었더라2백화의 의장만화의 거동이지금 고요히 잠드는 얼을 흔드며관공의 색대로 감도는향로의 여연이 신비한데어드메에 담기려고칠흑의 벽판 위로향연을 찍어백련을 무늬놓는이밤 화공의 소맷자락 무거이 적셔오늘도 우는아아 짐승이냐 사람이냐. 2024.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