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23

풍경(風磬)과 나

풍경(風磬)과 나 누리터에서의 이름이 바람의 종입니다. 어떤 사람은 바람도 하인이 있냐고 묻지만 누리터에서 바람의 종이라 쓰는 것은 風磬 이라는 한자를 한글로 바꾸다 보니 바람의 종이라 쓰게 되었습니다. 바람과 풍경(風磬)은 떼어 놓을 수 없죠. 바람이 불어야 풍경이 우니 말입니다. 하지만 바람에겐 풍경은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닙니다. 쇠로 만든 종 따위는 소리 내는 것 외에는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풍경을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바람은 불교적인 해석을 할 능력이 없어 풍경의 의미를 모르지요. 바람을 의인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풍부한 상상력은 뭐든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기도 합니다. 바람이 없다면 풍경은 의미가 있을까요? 조각품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

자연스러운 것을 방해하는 것들

자연스러운 것을 방해하는 것들 느낌으론 하루 만에 가을이 가버린 것만 같다. 거리엔 아직 매달린 잎들이 많은데 겨울이 잎사귀들의 삶을 재촉한다. 아니, 아마 죽어버린 것들이 산 듯 매달려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방 안 공기가 몹시 차다. 곰팡이 냄새나는 옷가지를 뒤져 하나 걸쳤다. 그리 해도 손 발가락이 굳어 감각이 둔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를 뵈러 갈 때나 도서관 갈 때, 아니면 술이나 담배가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내 방을 벗어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얼어 죽지 않은 것이 여간 묘한 게 아니다. 은행원, 포장마차, 보험설계사, 야구장 행상, 통닭 배달, 프로그래머……. 살며 경험한 직업이 서른 가지 남짓 된다. 생각해보면 조직 아닌 곳이 없다. 노점상을 해도 노점상연합회가 있고, 주변 노점..

아버지와 휘발유

아버지와 휘발유 “이 씨벌놈들! 모조리 확 싸질러 버릴 텐게, 짤막하니 유서나 써놓더라고 잉!” 이때가 내가 고3 때인 1990년 가을 이었는데 아버지는 너 죽고 나 죽자는 앞뒤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인천 주안에 있는 건설회사 사무실을 찾아가기 전에 내게 당부하셨다. “나가 밀리믄 니가 살짝 엄호를 혀. 겁만 주라고. 그려도 아니다 싶으믄 너만 튀는 것이여. 뭔 말인지 알것재?” 아버지가 받아야할 밀린 일당이 100일을 넘기자 아버지는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들고 나와 함께 택시를 탔다. 아버지를 믿고 따라 일했던 아랫사람들도 일당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울을 나기위해 벌인 살벌한 작전이었지만 난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찰서에서 우시던 어머니의 눈물 이후론 주먹을 쓰지 않았다. 정말 따라가기 싫었다. ..

기억속의 사진과 영상

기억 속 사진과 영상 인간의 묘한 기능 중 하나는 남겨둬야 하는 일을 반드시 머리에 새겨 두는 습관이다. 이 현상을 ‘우리는 기억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진과 영상이 필요 이상으로 많다면 건강에 해가 된다. 그 일이 사진이 아니라 영상으로 기억되고 있다면 그 일은 더욱더 당신에겐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사진과 달리 영상은 당신이 관속에 들어가기 전까지 남아있으며 이외의 기억하지 못하는 영상들에 대해 당신은 원망 없이 살게 된다. 그런데도 기억하려 애쓰는 일은 거짓을 덧붙이려는 체계적인 작업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입학할 때나 그 이전의 어린 시절 기억들이 영상으로 남아있다면 당신은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였을 것이지만, 사진으로 남아있는 사람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입..

어머니와 소주 한 병

어머니와 소주 한 병 군 시절 보통 소주 7~8병정도 마셨는데 중사진급 후엔 주량이 더 늘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16년 전 경남 진해에 포장마차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 이름 끝에 배다리나 복다리처럼 무슨 “다리“가 붙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여튼 간에 그 시절, 소주 열 병을 넘긴 순간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놀라면서 소주를 더 줄 수 없다는 거였다. 자기 가게에서 초상 치르고 싶지 않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다른 군함을 타던 동기가 마침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더니 ”아주머니 괜찮아요. 저 인간 사람으로 보면 안 됩니다. 무식한 뱃놈이라 생각하시고 제가 책임질 테니 몇 병 더 주세요.“하며 내 옆에 앉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아주머닌 불안한 기색이 가시질 않았다. ..

통(通)하는 사랑 2

통(通)하는 사랑 2 “그냥 갈래.” “왜 그래? 어디 가는데?” “혼자 있고 싶어서.” “태워 줄게. 타.” “아니야. 혼자 갈래.” “......”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타. 태워 줄게.”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녀는 말했다. “마음속에 다른 사람 있는 것 알아. 넌 나처럼 절대적이지 않으니까.” 아직도 그녀가 날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그토록 수많은 이야기를 했는데도 그녀는 늘 의심하고 있었다. 왈칵 울분이 터지는 걸 참고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넌 날 믿지 않는 구나!” 차는 삼거리 신호등 1차선에 대기 중이었다. 차에서 내려 도로를 가로질러 보도블록을 밟자마자 온 길을 되돌아 걸었다. 그녀의 차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한 후 사라졌다. 난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혼..

화구(火口)

화구(火口) 화(禍)는 부르거나 당하는 것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원인이 어디에 있든 대책 없이 당하는 것이다.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으로 당하는 화(禍)도 있지만, 삶속에선 다가올 화(禍)를 예측할 수도 있다. 원인을 안다면 원인을 급히 풀어 면해야 하지만 대부분 화(禍)를 당한 후에 움직인다. 믿고 있는 신에게 기도를 하거나 갑자기 종교를 갖기도 한다. 또는 무당을 찾아가 길흉화복(吉凶禍福) 점하여 굿으로 빌거나 부적을 받아오기도 하고, 당사자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하기도 한다.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화(禍)를 면하려 애쓴다. 세상은 점점 빠른 속도를 원하고,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여기저기서 개발되어 있고, 어떤 분야 건 하루빨리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를 바란다. 느림은 어리석은 단어로 전락했고, 일..

참말이여?

참말이여? 며칠 전 홍대에 문학행사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는데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신도림역에 내려 인천행 승강장으로 올라가는 데, 계단 중턱에 어떤 할머니가 신문지 한 장 깔고 더덕을 손질하고 계셨다. ‘한 봉지에 오천 원’이라고 종잇조각에 삐뚤빼뚤한 글자로 써 넣고는 안방마냥 차분히 앉아 손질 중이셨다. 퇴근시간이라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공간 한편에 앉아서 온갖 먼지를 마셔가며 한 봉지라도 팔아보려 더덕봉지를 들고 손 젓는 모습에 어머니가 생각났다. 난 어머니를 웃겨드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숨이 찰 정도까지 웃겨드리는 데는 특별한 대본이나 긴 시간 따윈 필요 없다. 소재도 다양해서 의무감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웃겨드린다. 그런데, 올 추석 때 찾아 뵀다가 쩌렁쩌렁 고함소..

약속과 사랑

약속과 사랑 내가 한 약속이란 강의, 읽기, 쓰기,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한 공부들, 사람들과 만나는 모든 것이다. 그것들을 우리는 그냥 할 일이라 한다. 출근하고, 만나고, 일하고, 밥 먹는 것도 할 일이다. 할 일과 내가 한 약속은 차이가 있다. 할 일은 싫든 좋든 해야 하는, 즉 개인 의지가 희석된 된 것이고, 약속은 내가 좋아서 꼭 하고 싶은 일이거나 통(通)한 사이에 맺는 것이다. 할 일에 비해 약속은 구속력이 강하고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과거 맺은 약속들은 파기되기도 하고 새로운 약속을 하기도 한다. 약속을 했어도 지키는 날이 있고 지키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런 약속은 미룰 수 있는 할 일이지 약속이라 말 할 수 없다. 살며 많은 약속을 한다. 부모, 형제, 친구, 결혼, 신..

그릇

그릇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보편적으로 그릇이 작아 답답하다면 몇 마디는 해줄 수 있다. 단, 지속적으로 볼 관계라면. 변하지 못하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필요 이상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기와 증오심에 휩싸인 사람은 설득이 불가능하다. 오해와 증오심으로 가득해 내가 하는 말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뿐더러 설득하기 위한 나의 말이 시기와 증오로 가득찬 그릇마저 깨뜨릴 수 있다. 세상엔 온갖 종류의 그릇이 많으므로 그 많은 그릇 중에 하나인 그저 그런 그릇이려니 하고 두는 것이 좋다. 그 모양으로 사는 것은 그의 삶이지 내가 온갖 설득과 진실을 토로하면서 그의 삶을 좌우지 하려하는 것은 지배욕이며 소유욕이다. 나는 매번 나의 그릇을 스스로 깨뜨리며 좀 더 큰 그릇을 만들며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