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奢侈(사치) - 김수영

by 풍문(風文) 2024. 10. 14.

奢侈(사치) - 김수영

어둠속에 비치는 해바라기와.......주전자와...... 흰 벽과......
불을 등지고 있는 성황당이 보이는
그 산에는 겨울을 가리키는 바람이 일기 시작하네

나들이를 갔다 온 씻은 듯한 마음에 오늘밤에는 아내를 껴안아도 좋으리
밋밋한 발회목에 내 눈이 자꾸 가네

내 눈이 자꾸 가네

새로 파논 우물전에서 도배를 하고난 귀얄을 씻고 간 두붓집 아가씨에게
무어라고 수고의 인사를 해야 한다지
나들이를 갔다가 아들놈을 두고 온 안방 건넌방은 빈집같구나
문명된 아내에게 [실력을 보이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발이라도 씻고 보자
냉수도 마시자
맑은 공기도 마시어두자
자연이 하라는대로 나는 할 뿐이다
그리고 자연이 느끼라는대로 느끼고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의지의 저쪽에서 영위하는 아내여
길고긴 오늘밤에 나의 사치를 받기 위하여
어서어서 불을 끄자
불을 끄자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