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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 김수영

by 풍문(風文) 2024. 10. 14.

비 - 김수영

비가 오고 있다
여보
움직이는 비애를 알고 있느냐

명령하고 결의하고
[평범하게 되려는 일]가운데에
해초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나부껴서 밤을 모르고
언제나 새벽만을 향하고 있는
투명한 움직임의 비애를 알고 있느냐
여보
움직이는 배애를 알고 있느냐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것이 현대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종교]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
그 누구의 시처럼

      그러나 여보
      비오는 날의 마음의 그림자를
      사랑하라
      너의 벽에 비치는 너의 머리를
      사랑하라

비가 오고 있다
움직이는 비애여

결의하는 비애
변혁하는 비애......
현대의 자살
그러나 오늘은 비가 너 대신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너의 [종교]를 보라

예사 위에 울리는 곡괭이소리
동물의 교향곡
잠을 자면서 머리를 식히는 사색가
-모든 곳에 너무나 많은 움직임이 있다

여보 비는 움직임을 제하는 결의
움직이는 휴식

여보
그래도 무엇인가가 보이지 않느냐
그래서 비가 오고 있는데!

<1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