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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에서 - 천상병

by 풍문(風文) 2024. 10. 7.


주막에서 - 천상병

도끼가 내 목을 찍은 그 훨씬 전에 내 안에서 죽어간 즐거운 아기를  (장 쥬네)

  골목에서 골목으로
  저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한디순하기 마련인가
  할머니 한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가는데
  할머니 등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