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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소원 - 천상병

by 풍문(風文) 2024. 10. 6.


한 가지 소원 - 천상병

  나의 다소 명석한 지성과 깨끗한 영혼이
  흙 속에 묻혀 살과 같이
  문드러지고 진물이 나 삭여진다고?

  야스퍼스는
  과학에게 그 자체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억지밖에 없는 엽전 세상에서
  용케도 이때껏 살았나 싶다.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똥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버려도
  이런 시를 쓰게 하는 내 영혼은
  어떻게 좀 안 될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여러 해 뒤에는
  꾹 쥔 십 원을 슬쩍 주고는
  서울길 밤버스를 내 영혼은 타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