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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사랑

약속과 사랑 내가 한 약속이란 강의, 읽기, 쓰기,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한 공부들, 사람들과 만나는 모든 것이다. 그것들을 우리는 그냥 할 일이라 한다. 출근하고, 만나고, 일하고, 밥 먹는 것도 할 일이다. 할 일과 내가 한 약속은 차이가 있다. 할 일은 싫든 좋든 해야 하는, 즉 개인 의지가 희석된 된 것이고, 약속은 내가 좋아서 꼭 하고 싶은 일이거나 통(通)한 사이에 맺는 것이다. 할 일에 비해 약속은 구속력이 강하고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과거 맺은 약속들은 파기되기도 하고 새로운 약속을 하기도 한다. 약속을 했어도 지키는 날이 있고 지키지 않는 날이 있다. 이런 약속은 미룰 수 있는 할 일이지 약속이라 말 할 수 없다. 살며 많은 약속을 한다. 부모, 형제, 친구, 결혼, 신..

그릇

그릇 그 사람을 생각할 때 보편적으로 그릇이 작아 답답하다면 몇 마디는 해줄 수 있다. 단, 지속적으로 볼 관계라면. 변하지 못하는 그릇이라면 그 그릇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필요 이상의 상상력을 동원해 시기와 증오심에 휩싸인 사람은 설득이 불가능하다. 오해와 증오심으로 가득해 내가 하는 말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뿐더러 설득하기 위한 나의 말이 시기와 증오로 가득찬 그릇마저 깨뜨릴 수 있다. 세상엔 온갖 종류의 그릇이 많으므로 그 많은 그릇 중에 하나인 그저 그런 그릇이려니 하고 두는 것이 좋다. 그 모양으로 사는 것은 그의 삶이지 내가 온갖 설득과 진실을 토로하면서 그의 삶을 좌우지 하려하는 것은 지배욕이며 소유욕이다. 나는 매번 나의 그릇을 스스로 깨뜨리며 좀 더 큰 그릇을 만들며 살아왔다..

글 중독

글 중독 문학으로 들어 선 것은 김수영 때문이었다. 詩때문이 아닌 인간 김수영 때문이었다. 나와 똑 같았다. 외곬 같은 성격, 때론 반항, 불같은 마음, 열정, 고난, 시대 반영, 총칼이 들어와도 펜으로 맞서는 인간 김수영. 詩는 잉크가 아니라 몸으로 써야한다는 김수영. 나와 쌍둥이 같다. 내가 그를 닮은 것이 아닌 그가 나를 닮았다. 왜냐면 그에 비해 나는 오만하며 게다가 서로 본적도 없으니까. 꼬인다. 삶이 평탄하지 않다. 하지만 평탄하면 자만으로 휩싸인다. 도리어 이 길이 낫다. 평온하면 詩는 없다. 굴곡이 만들고, 눈물이 짓고, 서러움과 억울함이 모여 이 화창한 봄날처럼 웃으며 활짝 피는 들꽃이 되기를 바라며 퇴고하는 것이 詩다. 소설을 읽으며 우는 사람 봤어도 詩를 읽으며 우는 사람 못 봤다. ..

슬픔 재우는 시간

슬픔 재우는 시간 주변의 죽음이나 이별 등 슬픔을 겪은 후 잡생각은 별 도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눈으로 보고 겪은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되도록 몸을 움직이고 있다. 썰렁한 집 안에서 떠올리는 생각들은 전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밖으로 돌고 되도록 나가고 혹은 지칠 때까지 운동을 해보는 것이 좋다. 모르는 사람들을 사귀어 보고 그간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대화는 기분전환에 큰 도움이 된다. 집안 부위기를 바꿔보고 가구나 커튼도 새것으로 바꿔보는 것도 좋다. 슬픔이 일어나기 전부터 고정된 물체들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잊히지 않는다면 믿는 종교에 의지하거나 시간에게 나의 삶을 살포시 얹으면 된다. 사람처..

만나봐야 알지 원

만나봐야 알지 원 책을 끼고 사는 터라 두세 평 정도되는 방 이곳저곳에 꽉찬 책꽂이에 들어갈 수 없는 피난書들이 있습니다. 커피를 타오다가 발길에 채이기라도 하면 무생인 책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누구나 책꽂이에 오래 방치되어 있거나 다락방에 처박혀 이사 갈 때나 만날 책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발에 걸린 책이 노자의 도덕경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짝궁인양 해설집도 있더군요. 드르륵 책을 둘러보는데 책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해보지 않았다면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치지 말라' 새삼 기억 나는 구절이었습니다. 커피잔을 집어 한모금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다니며 성장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책으로부터 받는 ..

가을노래 - 이해인

가을노래 - 이해인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소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 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나는 죽으면 - 주성임

나는 죽으면 - 주성임 나는 죽으면 꽃이 되야지 누구라도 내 향에 취하면 찍고 싶어할 향을 갖고 나야지 그리곤 네 앞에 피어나야지 너의 두 팔 안에 기쁨으로 감기어 며칠만 너랑 살다가야지 나는 죽으면 별이 되야지 온 하늘의 뜨는 별을 이기고 유독 환한 빛을 내는 별로 하룻밤만 살아야지 넌 잠도 들지 못하며 나만 바라보다 먼 동에 슬며시 고개를 묻고 나는 네 안에 꿈으로 있다 스러져 가야지 나는 죽으면 너로 다시 나야지 꼭 한순간만 살아야지 하여, 너만 바라는 쓸쓸한 사랑을 만나면 꼬옥 안아줘야지 그처럼 날 닮은 가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줘야지 잠시만 너를 대신해 사랑을 고백하고 이렇게 아프지 않을 추억되야지 주성임 1968. 6. 26 파주 연다산리 출생 「오늘의 문학」,「시인과 육필시」등단 천리안 문단..

그때는 몰랐습니다 - 김영애

그때는 몰랐습니다 - 김영애 뜬금 없이 찾아온 그대 맘 좋은 척 한자리 내어준 것이 밤낮 가리지 않고 부등켜 울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시간의 징검다리 맨 끝, 보여주기란 늘 주저함이 있고 어둠에 길들여진 그대 가끔씩 포식되는 햇살 한줌에 목젖을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았던, 이대로 일정한 간격을 두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여물지 못한 사랑이 불뚝불뚝 길을 낸 생채기 부풀어 올라 몸살을 앓아도 한차례 홍역처럼 지나가려니 그래서 늘, 뒷전이었던 그대 생각이 앞질러 새벽을 깨울 즈음 외톨이였던 신음이 참을 수 없는 몸짓으로 들고 일어 난 것을 사랑이라 불리웠으면 애초에 마음주지 말아야 했습니다 울다 울다 도드라진 아픔만큼 그대도 따라 울지만 별리의 아픔 손 끝 까지 못질할지언정 비켜간 마음자리 두고두고 상흔으로 남..

시의 길을 살아온 평생 - 황금찬'시인'

인생을 최고로 살아가는 23인의 지혜 - 자유문학사 시의 길을 살아온 평생 - 황금찬'시인' 1918 년 강원도 속초 출생. 일본 다이토학원 중퇴. 1953 년 '문예'에 시'경주를 지나며'와 1955 년 '접동새''여운' 등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함. 시문학상, 월탄문학산, 대한민국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수상. 저서에 시집 '현장', '5월의 나무', '나비와 분수', '오후의 한강', '산새', '구름과 바위', '한강' 외 다수가 있음. 많은 유혹을 물리쳤다. 어느 친구가 내게 묻는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땐 어떤 직업을 갖겠느냐?" 나는 단호히 말했다. "나는 시인이 되겠다." "또 한 번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는 무슨 직업을 갖겠는가?" 나는 또 단호히 말했다. "나는 그..

사치의 바벨탑

전혜린(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삶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과 일종의 필수적인 비애의 기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사치의 바벨탑 -여성의 가장 큰 본질적 약점은 사치의 광적 추구와 같은 생에 대한 비본연성인 것 같다.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도록 된다.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