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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에서 온 사나이(윤동주 론) - 천상병

by 풍문(風文) 2024. 10. 4.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윤동주 론) - 천상병

1
  깊은 밤
  멍청히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소리가 난다.
  방안은 캄캄해도
  지붕 위에는
  별빛이 소복히 쌓인다.
  그 무게로 살짝 깨어난 것일까?
  그 지붕 위 별빛 동네를 걷고 싶어도
  나는 일어나기가 귀찮아진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지붕 위
  별빛 동네 선술집에서
  누가 한잔 하는 모양이다.
  궁금해 귀를 쭈빗하면
  주정뱅이 천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요절한 친구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닐 게다
  저 놈은
  내 방을 기웃하는 도적놈이다.
  그런데 내 방에는 훔쳐질 만한 물건이 없다.
  생각을 달리해야지.
  지붕 위에는 별이 한창이다.
  은하수에서 온 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겁이 안 난다.
  놈도
  이 먼데까지 와서
  할일없이 나를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들어오라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뚜렷한 우리말로
  한마디 남기고
  놈은 떠났다.
  "아침 해장은 내 동네에서 하시오"
  건방진 자식이었는가 보다.

   2
  비칠듯 말듯
  아스름히 닿아오는
  저 별은
  은하수 가운데서도
  제일 멀다.
  이억광년도 넘을 것이다.
  그 아득한 길을
  걸어가는지
  버스를 타는지
  택시를 잡는지는 몰라도
  무사히 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