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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잃 고- 김수영

by 풍문(風文) 2024. 9. 19.

너를 잃 고- 김수영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있는
너는 억만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늬가 없이 사는 삶이 보람있기 위하여 나는 돈을 벌지 않고
늬가 주는 모욕의 억만배의 모욕을 사기를 좋아하고
억만인의 여자를 보지 않고 산다
나의 생활의 원주 우에 어느날이고
늬가 서기를 바라고
나의 애정의 원주가 진정으로 위대하여지기 바라고

그리하여 이 공허한 원주가 가장 찬란하여지는 무렵
나는 또하나 다른 유성을 향하여 달아날 것을 알고

이 영원한 숨바꼭질 속에서
나는 또한 영원한 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 하겠다
나는 억만무려의 모욕인 까닭에

.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