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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지둔(愛情遲鈍) - 김수영

by 풍문(風文) 2024. 9. 17.

애정지둔(愛情遲鈍) - 김수영

조용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대신 사랑이 생기었다
굵다란 사랑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우스운 이야깃거리다
다리밑에 물이 흐르고
나의 시절은 좁다
사랑은 고독이라고 내가 나에게
재긍정하는 것이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조용한 시절 대신
나의 백골이 생기었다
생활의 백골
누가 있어 나를 본다면은
이것은 확실히 무서운 이야깃거리다
다리밑에 물이 마르고나의 몸도 없어지고
나의 그림자도 달아난다
나는 나에게 대답할 것이 없어져도
쓸쓸하지 않았다

생활무한
고난돌기
백골의복
삼복염천거래
나의 시절은 태양 속에
나의 사랑도 태양 속에
일식을 하고
첩첩이 무서운 주야
애정은 나뭇잎처럼
기어코 떨어졌으면서
나의 손 우에서 신음한다
가야만 하는 사람의 이별을
기다리는 것처럼
생활은 열도를 측량할 수 없고
나의 노래는 물방울처럼
땅속으로 향하여 들어갈 것
애정지둔

<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