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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 김수영

by 풍문(風文) 2024. 9. 16.

토끼 - 김수영

1

토끼는 입으로 새끼를 뱉으다

토끼는 태어날 때부터
뛰는 훈련을 받는 그러한 운명에 있었다
그는 어미의 입에서 탄생과 동시에 타락을 선고받는 것이다

토끼는 앞발이 길고
귀가 크고
눈이 붉고
또는「이태백이 놀던 달 속에서 방아를 찧고」......
모두 재미있는 현상이지만
그가 입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은 또한번 토끼를 생각하게 한다

자연은 나의 몇사람의 독특한 벗들과 함께
토끼의 탄생의 방식에 대하여
하나의 이덕을 주고 갔다
우리집 뜰앞 토끼는 지금 하얀 털을 비비며 달빛에 서서 있다
토끼야
봄 달 속에서 나에게만 너의 재주를 보여라
너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너의 새끼를


2

생후의 토끼가 살기 위하여서는
전쟁이나 혹은 나의 진실성모양으로 서서 있어야 하였다
누가 서있는 게 아니라
토끼가 서서 있어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캉가루의 일족은 아니다
수우나 생어같이
음정을 맞추어 우는 법도
습득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서서 있어야 하였다

몽매와 연령이 언제 그에게
나타날는지 모르는 까닭에
잠시 그는 별과 또하나의 것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하나의 것이란 우리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 곡선같은 것일까

초부의 일하는 소리
바람이 생기는 곳으로
흘러가는 흘러가는 새소리
갈대소리
「올 겨울은 눈이 적어서 토끼가 은거할 곳이 없겠네」

「저기 저 하아얀 것이 무엇입니까」
「불이다 산화다」

<1949>